FC 서울 김기동(52) 감독이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건 2013년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코치로 합류하면서부터다.김기동 감독은 고(故) 이광종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이었다.김기동 감독은 2016 리우 올림픽에선 신태용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8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김기동 감독은 이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를 거쳐 지휘봉을 잡았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서울 감독실 작전판엔 ‘2025 K리그에서 FC 서울이 우승하는 방법’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김기동 감독이 “그거 숫자만 2024에서 2025로 바꾼 겁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이근승 기자
사잔=이근승 기자
김기동 감독은 2023시즌 코리아컵 정상에 올랐다.포항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2013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김기동 감독은 한동안 우승과 멀어졌던 포항의 자존심을 되찾는데 앞장섰다.김기동 감독은 2023시즌을 마친 뒤 포항을 떠나 서울 사령탑에 올랐다.김기동 감독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축구계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김기동 감독은 서울 감독 첫해부터 K리그1 파이널 A 진입이란 성과를 냈다.서울이 파이널 A에 속한 건 2019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서울은 2024시즌 K리그1 4위를 기록하며 2025-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도 유력한 상태다.선수 시절에 이어 지도자로도 승승장구(乘勝長驅) 중인 김기동 감독의 이야기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코치 시절. 사진=대한축구협회
Q.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코치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습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신태용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한국의 8강 진출에 힘을 보탰습니다. U-23 대표팀 코치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저는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나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故 이광종 감독님과 2013년도에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죠. 선수와 지도자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지도자든 ‘이렇게 가르쳐야지’란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실행에 옮기기가 정말 어려워요.제일 어려웠던 건 ‘코칭스태프가 구성한 훈련을 선수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습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Q. 고 이광종 감독, 현재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완전히 다르죠. 정반대예요. 고 이광종 감독님은 현실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승리 가능성을 최대한 높인 축구를 하셨죠. 보수적으로 팀을 운영하면서 조금이라도 높은 승리 확률을 택하신 분이었습니다. 보시는 분들은 ‘재미없는 축구’라고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단단한 팀을 만들어서 결과를 냈잖아요.신태용 감독은 화려한 걸 참 좋아해(웃음). 더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욕심도 많아요. 다양한 걸 시도하거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봅니다. 축구를 잘해야 하고, 그 안에서 화려함도 있어야 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경기가 2016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이었어요.Q. 그 경기 기억납니다.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2-0으로 앞서다가 2-3으로 역전패했던 경기였죠.축구가 참 쉽지 않다는 걸 그 경기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우리가 권창훈, 진성욱의 연속골로 2-0으로 앞서갔어요. 후반전 10분까지만 해도 완전히 우리 분위기였다고. 우리가 여기서 골을 더 넣기 위해 일본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추격골을 허용하고 나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곧바로 동점골까지 헌납하면서 흐름이 완전히 일본 쪽으로 넘어갔죠.경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전술 변화, 교체 카드 등을 빠르게 활용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U-23 대표팀에서 국가대표팀에 뽑혀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들을 지도했어요. 스타일이 정반대인 두 지도자를 보좌하면서 많은 걸 배웠고요. U-23 대표팀에서의 경험은 감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김기동 감독(사진 맨 오른쪽)은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로 최순호 감독을 보좌했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이후 포항 수석코치를 맡다가 잠시 감독대행을 거쳐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처음 포항 지휘봉을 잡았을 때 팀 분위기가 안 좋았잖아요.왜 다들 내가 감독대행을 거친 거로 알고 있는 거야(웃음). 저는 감독대행을 해본 적이 없어요. 관례가 그리돼 있어서인지 많은 분이 감독대행을 거쳐서 정식 감독이 된 것으로 아시는 듯합니다. 저는 2019년 4월 23일 수석코치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어요. 여기에도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감독 선임 발표 전날이었죠. 22일에 제가 구단으로 들어갔어요. 구단에선 제게 감독대행을 맡기고 조금 지켜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지휘봉을 잡고 치러야 하는 첫 경기가 수원 삼성, 그다음이 울산 현대(울산 HD의 전신)였거든. 특히나 당시 포항은 홈에서 치른 수원전에서 5년 동안 한 번도 못 이긴 상태였습니다. 울산은 그때도 멤버가 상당히 좋을 때였고요.당시 구단 대표께서 제게 “우선 이 2경기를 해보고 잘 되면 감독으로 승격시켜 줄게”라고 했습니다. 구단으로선 그게 당연하잖아요. 감독으로 빠르게 승격시켰는데 시작부터 꼬여버리면 곤란할 수 있으니까. 대표님 이야기를 듣고 나와서 단장께 면담을 요청했어요. 단장께 “저 감독대행은 안 합니다”라고 했습니다.Q. 이유가 있었습니까.단장님이랑 막역한 사이였거든요. 솔직하게 얘기했죠. 제가 단장님에게 “저 지금 들어가서 최순호 감독님 봬야 한다. 최순호 감독께 ‘구단에서 저보고 감독대행하라는 데 도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어요. 단장님이 “최순호 감독도 너를 추천했다. 그래서 감독대행으로 몇 경기 보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제가 그랬죠. 제가 단장께 “저 감독대행은 안 합니다. 예의가 아니잖아요. 저 이동하는 데 40분 걸릴 겁니다. 그 안에 결정해 주세요. 만약 정식 감독으로 선임해 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나왔어요.Q. 언제 연락이 왔습니까.딱 40분 뒤에 연락이 왔어요. 단장님이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 최순호 감독님 찾아뵙고 말씀드렸죠. 최순호 감독께 “감독님, 구단에 저를 추천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최순호 감독님은 격려를 해주셨죠. 그렇게 감독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 감독 시절.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포항이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리며 공식전 4경기에서 1무 3패의 부진에 빠졌을 때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FA컵(코리아컵의 전신)에선 4년 연속 조기 탈락한 상태였죠. 김기동은 팀을 맡자마자 능력을 발휘합니다. 홈 수원전에서 5년 만의 승리를 이끈 데 이어 울산까지 잡아냈습니다. 끝이 아니었죠. 인천 유나이티드, 경남 FC도 연달아 잡아내며 감독 부임 후 4연승을 내달렸습니다. 김기동 감독은 그해 팀을 K리그1 4위에 올려놨고요. 김기동 감독은 지도자 첫해부터 잘나갔습니다.에이(웃음). 사람들이 좋은 것만 기억해서 그래요. 그때 나도 힘들었어. 감독 부임 후 4연승을 내달린 뒤 만난 상대가 서울이었습니다. 홈에서 치러진 경기였는데 우리가 점유율에서 8:2 정도로 앞섰죠. 결과는 0-0이었습니다. 4승 1무면 좋은 출발이었죠. 문제는 이후였습니다. 서울전 무승부 후 깊은 부진에 빠졌어요. 4연패를 경험했죠. 내용도 안 좋았습니다. 그 경기 아시죠? 강원 원정에서 4-0으로 앞서다가 4-5로 뒤집힌 경기.Q. K리그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 아닙니까.저도 못 잊어요(웃음). 정말 어려웠습니다. 서울전 무승부를 시작으로 11경기에서 1승 4무 6패를 기록했습니다. 순위가 다시 10위까지 떨어졌죠.Q. 결국엔 K리그1 4위로 시즌을 마쳤잖아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겁니까.변화가 있었죠. 저는 당시 ‘이런 축구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처음 지휘봉을 잡고 4연승을 질주할 땐 대구 FC와 비슷한 축구를 했습니다. 수비에 힘을 실었어요. 공을 빼앗으면 전방에 김승대, 완델손의 빠른 발과 결정력을 활용했죠. 금세 한계점이 왔습니다. 상대에 우리 전략을 분석 당하면서 힘을 쓰지 못했어요. 수비 부담이 크다 보니 체력 저하도 눈에 띄었죠.내가 원하는 축구가 결과보다 우선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색깔 있는 축구가 오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시간이 필요했죠. 단장님을 만났습니다. 단장께 “변화를 주겠습니다. 좀 기다려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김)승대를 (여름 이적 시장에서) 전북 현대로 보내면 최영준을 꼭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전북에서 승대를 원했거든요.Q. 김승대는 당시 포항의 핵심 공격수였잖아요. 시즌 중이기도 했고요. 구단에 잡아달라고는 안 했습니까.우리가 잡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비즈니스잖아요. 김승대를 보낸다면 무조건 최영준을 받아와야 했습니다. 외국인 선수도 요청했어요. 그때 일류첸코, 팔로세비치를 품은 겁니다. 새로운 선수들이 합류했습니다. 변화를 주기 시작했죠. 제가 원하는 색을 조금씩 입혀갔습니다. 여름 이후 상승세를 타면서 K리그1 4위로 감독 데뷔 시즌을 마쳤어요.Q. 서울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올해와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올 시즌 초반 홈 5연패에 빠지는 등 뜻대로 안 풀리다가 여름을 기점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잖아요. 서울이 2019시즌 이후 처음 파이널 A에 진입했고, 아시아 무대 복귀도 유력해졌습니다. 앞서서 김기동 감독도 이야기했지만 변화를 주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김기동 감독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도 성과를 보여주는 듯합니다.코치진이 잘 도와주고,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이죠(웃음). 감독 데뷔 시즌과 서울에서의 첫 시즌을 돌아보면 비슷한 점이 있어요. 처음엔 제가 원하는 선수 구성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똑같이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거예요. 그게 통한 거지. 올해도 (강)현무, 야잔이 오면서 수비 안정을 꾀했잖아요. 루카스가 오면서 공격에도 힘을 더했고.올여름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더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도 선수 구성을 하고 있잖아요. 제가 원하는 선수 구성을 해서 동계 훈련에 돌입한다면 내년엔 확실히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김기동 감독은 성과로 이야기하는 지도자입니다. 김기동 감독이 선수를 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무엇입니까.태도요. 선수는 자기 기분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면 안 됩니다. 선수들에게 늘 강조해요. 선수들에게 “네 기분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면 절대 안 된다”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프로선수라면 얼굴에 기분이 드러나면 안 됩니다. 자기 기분을 얼굴에 다 드러내면 저와의 관계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어요. 제 앞에서만 그런다면 면담을 통해서 고쳐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팀 동료들이나 팬들 앞에서 그러는 건 용납할 수 없는 거죠.윌리안이 한 예에요. 제가 올 시즌 윌리안에게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했죠. 올 시즌 후반기 윌리안 보셨죠. 전방 압박, 수비 가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서울 지휘봉을 처음 잡았을 때 윌리안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는 대표적인 선수였어요. 윌리안은 자유를 중시하고, 자기주장이 상당히 강한 선수였습니다.Q. 그런 선수들을 컨트롤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김기동 감독은 그런 선수들의 변화를 끌어냅니다. 비결이 있습니까.선수라면 누구든지 자기주장이 강해요. 생각해 보세요. 돈 받고 축구하는 프로선수인데 승리욕 없는 선수가 어딨습니까. 다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건 성품이라고 봐요. 인격이란 겁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한들 참을 줄도 알아야 해요. 축구는 팀 스포츠잖습니까. 코칭스태프, 선수들, 프런트 모두 서울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리잖아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죠.저도 성질 있어요(웃음). 저도 사람인데 화가 날 때 있죠. 감정이 오르면 말을 강하게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는 거예요. 꾹 참고 선수들에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지도자가 감정 조절 하나 못하면 선수들이 따르겠어요? 안 따르죠.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선수들과 대화합니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도록 힘쓰는 게 제 역할이에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 시절. 김기동 감독이 외국인 스트라이커 일류첸코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김기동 감독의 강점 중 하나는 외국인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낸다는 겁니다. 포항 시절인 2020시즌엔 K리그1 최다득점(27경기 56득점)을 기록하면서 3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포항 공격을 책임진 일류첸코, 팔로세비치의 활약이 대단했죠. 2023시즌 포항 전방을 책임진 제카는 직전 시즌 대구에서보다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올해는 잉글랜드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제시 린가드를 완벽하게 부활시켰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다루는 김기동 감독만의 비법도 있습니까.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믿음이 강할수록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일류첸코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였어요. 저는 일류첸코를 경기에 안 내보냈습니다. 팔로세비치도 선발보단 교체로 썼습니다. 후반전 20분 내·외로 뛰게 했을 겁니다. 당시 그 선수들은 팀을 우선하지 않았거든요. 팀을 존중하지 않았어요. 내국인 선수들은 죽자 살자 뛰면서 수비하는 데 자기들은 안 하는 겁니다.일류첸코, 팔로세비치에게 제가 원하는 걸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말했죠. “팀을 위해 변화하지 않으면 네 출전 시간도 바뀌지 않는다”고. 바뀌더라고요. 전방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압박, 수비 가담도 철저히 하는 겁니다. 얘기하다 보니까 하나 또 떠오르는 게 있네.Q. 기대하고 있습니다.일류첸코가 교체로 20분 정도 뛴 경기였어요. 2골을 넣은 거예요. 일류첸코가 골을 넣고 내 앞으로 와서 세리머니를 하는거야. 나 보라고 하는 거잖아(웃음). 다음날 일류첸코를 제 방으로 불렀어요. 터놓고 얘기했습니다.제가 일류첸코에게 “어제 경기에서 아주 좋았다. 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선수라면 그 정도 성격은 있어야지. 그런데 일류첸코야, 여긴 한국이야. 그런 행동은 한국 정서와 맞지 않아. 네가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방으로 찾아와. 내가 다 들어줄게. 약속한다. 대신 또 한 번 그런 일이 있으면 나도 널 용서할 수 없어”라고 했어요.그 일이 있고 나서 더 끈끈해졌던 것 같아요. 서로를 믿고 온 힘을 다하는 관계가 됐죠. 경기력, 결과 모두 좋았습니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올해 서울 유니폼을 입은 최 준을 인터뷰했을 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최 준이 올 시즌 개막전 광주 FC 원정 엔트리에서 빠졌잖습니까. 최 준이 “김기동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엔트리에서 빠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왜 빠졌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내 축구 인생에서 이런 감독님은 처음이었다.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최) 준이가 그래요? 준이가 사회생활 좀 할 줄 아네(웃음). 제가 어린 나이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잖아요. 저는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열심히 하려고 했죠. 하지만, 성과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때의 경험들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해주지 않나 싶습니다.제가 선수 경험이 많잖아요. 중심에서 팀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베테랑 선수들의 고민도 누구보다 잘 알고요. 선수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아파하고 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랄까. 그래서 (기)성용이나 (임)상협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죠.제가 41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잖아요. 37살 때부터 41살 때까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세요? 하루하루 낭떠러지에서 동아줄 하나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의지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순간 저는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뭐라도 하려고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베테랑 선수들이 힘든 게 이런 거거든요.베테랑 선수들은 1경기 못하면 편견에 따른 평가를 받아요. ‘저 선수는 나이가 많으니까 이제 안 된다’는 겁니다. 20대 선수들은 1경기 못하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든가 ‘경험 부족’이란 평가를 받잖아요. 저의 37살 때를 돌아보면 1경기만 못해도 ‘이제 끝’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베테랑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큰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요.Q. 축구인 김기동의 삶을 보면 ‘자기 관리가 대단한 사람’이란 게 느껴집니다.제가 선수로 뛸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지금은 스포츠 과학이 몰라보게 발전하면서 선수들의 몸 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지금은 피지컬 코치가 흔하지만 우리 땐 없었습니다. 제 선수 시절 막바지에 피지컬 코치를 처음 봤어요. 지금 선수들은 ‘어떻게 잘 쉬느냐’가 관건입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정말 중요해요. 몸에 좋은 것만 하고, ‘안 좋다’는 건 안 하면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예전 기사들을 쭉 찾아봤습니다. 감독님이 사모님과 연애하실 때 ‘몸 관리를 위해 항상 오후 10시 전엔 숙소로 복귀했다’고 하더라고요.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저는 지금도 여자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아내에게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제 장점 중 하나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절대 까먹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내가 무언가를 가르쳐주면 바로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는 타입이죠.연애할 땐 몰랐어요. 제가 밤 10시 전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숙소 골목이 엄청 어두웠어요. 콜택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지. 좀 걸어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제가 ‘잘 가’란 말만 하고 아내를 혼자 집에 가도록 한 거예요. 아내 혼자 골목을 걸어 나가서 택시를 잡고 집에 간 거야.